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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성마비 송명희가 노래하는 놀라운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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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신해영 댓글 0건 조회 8,424회 작성일 1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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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희 시인은 약하고 보 잘 것 없는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중증뇌성마비 환자였습니다. 의사의 부주의로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드려 소뇌를 다쳤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울지도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했습니다. 여물지 못한 계란처럼 아기 머리는 만지는 대로 푹푹 들어가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집안은 너무 가난해서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기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약한 몸과 술과 담배와 과로로 병이 들었고 어머니도 몸이 약해 아기에게 젖도 먹이지 못하고 우유도 사 먹이지 못했습니다. 쌀가루 끓인 물만 아기에게 억지로 떠먹이곤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어린 시절의 고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곱 살까지도 누워만 있다가 업으면 머리가 등 뒤로 고꾸라져 허리가 빠지고 목이 꺾일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때의 고통을 지금까지도 기억해낼 수 있음은 지독한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송명희 씨는 열 살이 넘어가면서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18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목 이하의 전신이 마비된 조니 에릭슨이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반항했던 것처럼, 송명희 씨도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불쑥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엄마는 애기를 자연 유산도 잘 하면서, 왜 난 이렇게 났어? 나도 그렇게 유산해 버리지 왜 이렇게 나은 거야?”

     

    송명희 씨는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욕설을 퍼 붓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집이 싫었고 그런 세상이 싫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미웠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타나지도 않고 뭔가 해주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향해 불신하며 원망하며 반항했다.

    한없이 외로웠고 답답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자살하려고 했다. 무조건 반항이었고 무조건 원망이었다. 미치고 싶었으나 미쳐지질 않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를 잘라버렸다. 모든 게 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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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희 시인은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몸뿐 아니라 그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완전히 망가지고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보배를 담은 고귀한 질그릇이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16살 되던 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빛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몸에 담게 됩니다. 약하고 보 잘 것 없던 뇌성마비의 깨어진 질그릇이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귀하게 쓰여 지는 고귀한 그릇으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6).

    주님은 이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송명희 씨에게 자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송명희 씨가 16살 되던 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교회 강단 밑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교회 강단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넋 나간 사람처럼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 모든 걸 다 드릴게요.”

     

    그런 기도를 한 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빛이 소녀 송명희 머리 위에서 밤낮으로 반짝거렸습니다.

    사흘 뒤 밤 열 두 시에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반짝이는 빛이 위로 올라가고 밝은 빛이 비추이면서 두루마리 같은 것이 눈앞에 서더니 양쪽으로 펼쳐지고 이상한 글이 적혀 있을 것을 보았습니다. 한글도 영어도 한자도 일어도 아니었고 생전 처음 보는 글이었지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그 두루마리는 말려서 다시 올라가고 밝은 빛도 사라지고 다시 작은 빛이 반짝거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빛을 소녀 송명희에게 비추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해 1979년 10월 어느 날 저녁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송명희 씨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도 원망하고 반항하던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녀 송명희에게 아버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부터 소녀 송명희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깨어진 질그릇에 그의 빛을 비추어 주셨고 아버지로 나타나주셨고 그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들에 대한 의심이 생길 때 이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그것도 못 믿으면서 어떻게 나를 믿겠느냐?”

     

    마음속에서 사탄의 유혹이 일어나고 그래서 죄책감과 낙심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이런 음성도 들려 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떤 때는 극심한 몸의 고통 중 자리에 누어있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누어서 고통 중에 있는데 어두움 속에서 나무토막이 나타나고 그 위에 손바닥이 올려지고 돌로 된 못이 박혀서 손바닥을 부수며 뚫고 나갔다. 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뼈에서 흰 진액이 나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주님의 못 박히신 손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소녀 송명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숨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하나하나 나타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값없는 은혜라 하여 가볍게 여길 만한 게 아니라 값이 너무나 커서 그 값을 붙일 수 없다” 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격해서 울면서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랑에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동한 이 소녀는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고 싶었으나 몸을 움직여 전할 수가 없어서 깨달은 말씀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시를 불러주셨고 시를 쓰게 했습니다. 소녀 송명희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주님이 깨어진 질그릇 같은 자기에게 주님 자신을 보여주셨고 주님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기쁨과 감격에 사로잡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은 일기장 한 장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문학에 소질이 없었던 나에게 문학을 가르치셨고 예술성을 불어넣으셨다. 시를 불러주시고 성경을 알려주셨다. 그 누구도 나와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성경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셨고 주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나는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대로 노트에 시를 썼다. 그 비밀스런 은혜의 말씀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나는 주님과 울고 웃으며 그렇게 살았다.”
     

    이 무렵 송명희 시인은 에바다란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아니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를 그에게 불러 주셨습니다.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눈을 열어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귀를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들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맘을 열어주소서 주님의 뜻 깨달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입을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전할 수 있도록.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면서도 이십대가 되면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휠체어도 없어서 교회도 못 가고 봉사도 전도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나요?”

     

    그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믿었겠느냐? 너는 지금 기도로 나를 기쁘게 하고 있다. 내가 너를 반드시 들어 쓰리라! 내가 너에게 많은 사람을 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안수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늘 들었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서글픔에 잠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희동 집 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서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희동 교회에서 가장 친하던 친구 최인자 언니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부르짖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친구도 집도 휠체어도 아무 것도 없어요!”

     

    바로 그때 주님이 그에게 시를 불러 주셨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써라! 왼 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울먹이면서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시를 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꽉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하나님 공평해 보이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러나 주님은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써라!”

     

    송명희 자매는 하나님의 고집을 자신이 꺾을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그 유명한 “나” 라는 시를 썼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주님을 증거 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이제 송명희 시인은 일약 주님에 의해 주님을 증거 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어 집니다.

     

    그는 극동방송을 늘 들으면서 극동방송을 교회로 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극동 방송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극동방송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는 계속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는 시를 썼습니다.

     

    그가 21살이 되던 1984년 8월 16일 극동방송에 가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유관지 목사님은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트에 써 놓은 시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1년 후인 1985년 5월 여운학 사장의 도움으로 규장문화사에서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왼손으로 몽당연필로 쓴 원고지 열 권 분량의 시와 왼손으로 몽당색연필로 그린 그의 그림을 표지로 한 송명희 시인의 시집 3권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송명희 시인의 영혼의 고백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너무 너무 행복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책만 봐도 눈물겹도록 기쁘고 감사한데 원고료로 백만 원이 주어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번 돈이었습니다.

     

    그 당시 송명희 씨의 집은 전세금이 부족해서 50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송명희 씨는 원고료가 나왔을 때 휠체어도 사고 전동타자기고 사고 빚도 갚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원고료 전부를 봉투째 자기가 교회로 삼고 있던 극동방송에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송명희 시인을 시인으로 간증자로 주님을 증거 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게 하셨습니다.

     

    헌금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고무송 씨가 “명희 양에게 전동타자기를 주옵소서.” 란 제목의 기사를 「빛과 소금」지에 실리자 이름 모를 독자가 그에게 전동타자기를 생일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이듬해인 1986년부터 어느 목사님이 기증한 휠체어를 타고 이 곳 저곳을 다니며 주님을 증거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극동방송의 부사장이 송명희 시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극동방송에 맡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뜻밖의 제안에 송명희 씨와 어머니는 당황했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지요.”

    송명희 씨는 놀란 토끼처럼 가슴이 뛰고 혀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긴장감이 돌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송명희 씨는 순간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난 이대로 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부사장님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송명희 씨를 덥석 껴안았습니다. 후에 부사장님은 극동방송에서 송명희 시인에 대한 말을 다음과 같이 하면서 흐느꼈습니다.

     

    “명희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대로가 좋아요. 주님이 만드신 이대로 살겠어요.’

    여러분!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는 사지육체 멀쩡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도 원망 불평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1985년 5월부터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1천 6백여 회 집회를 인도하며 주님을 증거 하게 됩니다. 기쁨과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섭섭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서 가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가서 네 몸만 보여도 된다.”

    그래서 그는 가서 몸만 보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장애인들을 찾아갔고 교도소와 소년원을 찾아갔고 큰 교회 작은 교회를 찾아갔고 미국, 일본, 대만, 유럽 곳곳을 찾아가서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자기에게 보여주시고 나타내 주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몸으로 영혼으로 증거 했습니다. 그는 목도 가누지 못하고 힘겹게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내, 내가 이, 이런 몸이 아, 아니었다면 여, 여기 오지 않았을 거, 것입니다. 그, 그 이름의 비, 비밀은 그, 그 이름 안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이, 이름 안에 내가 있고 내가 그, 그 이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10분 정도만 머뭇거리며 말해도 많은 사람들은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죄를 회개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의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에 감동을 받아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바울 사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연약한 질그릇 송명희 시인의 몸에 자기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주님에게 돌아온 사람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그토록 약한 몸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자신의 몸을 주를 위해 헌신했던 송명희 시인은 몇 년 전부터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고통스런 투병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어머니님과 아버지님과 여동생의 극진한 사랑의 돌봄을 받으며 지금도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피를 흘리며 주님을 전하다가 그녀가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든 몸으로, 누어있는 몸으로, 때로는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지니고 있는 몸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주님을 가장 순수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 힘들다고, 어렵다고, 원망과, 불평으로 미워하며 짜증내며 투정부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렵기로 따지면 이 송명희 시인만큼 하겠습니까? 저렇게 전신의 장애를 가지고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사는데. 저렇게 아파하며 고통 받으며 죽어가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살아가는데....

     

    우리가 송명희 시인보다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저렇게 엄청난 장애를 가지고도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데 ....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합니까? 무엇이 삶을 힘들게 합니까? 가난입니까? 병입니까? 아닙니다. 가난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병든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위에 나를 돕는 자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님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중증 뇌성마비로서 질그릇과 같은 보 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의지할 것도 바라볼 곳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 보 잘 것 없는 질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들어오셨습니다. 연약한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질그릇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외로운 자가 아닙니다. 그는 슬픈 자가 아닙니다. 가난도, 병도, 심지어 죽음도 무섭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슴 안에 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지요? 당신 안에 이 [놀라운 이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이제 주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요16:33]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다시 말씀하십니다. [마 28:20]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 부활의 계절에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고 기죽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약해지지 말고, 힘내시고,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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